꿈같은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감사
(혈액암협회 소식지 수기원고 작성)
이런 귀한시간이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2008년 3월 3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 M4.'
투병기간 11개월간 함께한 녀석의 이름입니다.
21세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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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2013년이 되고 발병 후 5년이 지나
더 이상 중증질환자가 아닌 완치의 몸이 되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애늙은이가 되어버렸지만.. 차라리 지금이 더 좋습니다.. ^^
정말 감명깊게 읽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던 '가시고기'가 많이 생각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눈물도
웃음도
고생도
감사도
참 많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몇날며칠을 젊은 몸뚱이만 믿고 혹사를 시킨터였습니다.
굉장히 피곤하고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도 학교와 일을 병행했습니다.
워낙 입안이 자주 헐었던지라.. 별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떨어지지 않던 감기는 점점 악화되 고열과 어지러움.. 복통.. 구토..
약간의 출혈증상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동네병원을 전전하다 입원한 종합병원에서 발견해 치료를 받은 아산병원으로 쫓겨나듯 치료를 재촉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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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젊은놈이 염치가 없었습니다.
복잡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앉을 자리도 없어 서성이시는 어르신들을 뵈는데..
제 자리라고 침대를 놓아 눕혀주니.. 맘이 편치않았습니다.
사흘간 응급실에서 받은 검사이후 나도 모르는사이 백혈병과 전투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있었습니다.
호강도 그런 호강도 없습니다.
올림픽대교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의 거대한 특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제대로 경치를 감상하지 못한게 뒤늦게 아쉬워집니다.
이내 모든 환우분들이 거치는 관해의 과정을 거치게되었습니다.
참 힘들다는 항암제이지만 오히려 약을맞자마자 염증이 가라앉고.. 통증이 사라지고..
약효는 톡톡히 봤습니다.
워낙 점막 염증이 심해 붙이는 마약패치 진통제를 큼지막한거 두개를 등짝에 붙이고 있었는데
염증도 가라앉고
통증도 사라지니
왠지모를 자신감이 솟구칩니다.
외래가 끝난 병동을 서성이는데 일이 났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 배속에서 빨간 무언가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약성진통제 때문이었겠지만, 진통도 없이 피를 쏟아내게 된겁니다.
미련하게도 이걸 당분간 나만알기로 했습니다.
심야시간, 두어번 같은 증상을 겪은뒤 사실을 알렸습니다.
소등된 병실에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간호사 누나들, 인턴선생님, 담당 레지던트선생님까지 모두 모여들었고
몇가지 검사 끝에 TV에서나 보던 산소호흡기까지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묶이듯 침대에 고정되고 나서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픈상황에 참 버젓이도 잘 걸어다녔 다는거.. 이래서 마약이 참 무섭나봅니다.
그 당시 저의 상황은 장 출혈.
환우분들은 아시겠지만, 혈액수치는 호중구 '0'
혈소판 수치 '2만' (정상인 15만) 으로 외과적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별다른 방도 없이
곧바로 응급수혈과 지혈제.. 각종 항생제를 일제히 쏟아붓게 되었습니다.
산소호흡기에.. 뭔가 공포스러움를 주는 그래프달린 기계까지..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얼마간 꽤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6인실 병실에서 정말 미안할 정도로 저때문에 많이들 고생하셨을 겁니다.
열은 해열제를 맞는대도 불구하고 매일 40도를 넘나들고.. 탈수에 시달렸지만 추가출혈을 예방하기 위해 물조차 마실 수 없었습니다.
타는 목마름.. 이란 그런거였습니다.
안타까워 하던 담당선생님께서 끓인 물을 묻힌 거즈를 입에 물려주셨습니다.
'절대 먹으면 안돼!' 라면서요.
문병때 받은 포도주스가 보였는데, 정말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리만족을 위해 어머니에게 맛있게 먹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꿀꺽 꿀꺽' 소리내면서 먹으라고..
정말 내가 마신듯 기분이 좋았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맘이 참 아프셨을거 같습니다.
수치가 회복되며.. 출혈도 완전히 멈추고 열도 내렸습니다.
산소공급기도 코에 꼽는것까지 뺐습니다.
그 사이 머리는 홀랑벗겨지고~
몸무게는 12 kg 이 줄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달간 먹은거라곤..
수혈 150여 봉
24시간 영양제
뿐이었으니까요.
그 날 저녁까지도 구토와 기침에 시달리긴 했지만,
감사했습니다.
구토를 하는데 참 편했거든요.
물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소한 감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하게 나를 고생시켰지만, 물 한모금에도 감사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후에도 공고요법(고용량 항암) 6차례를 11개월간 실시하면서도 크고작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폐렴으로 숨을 쉬지 못하게되자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이 어라나 감사한지 알게 되었고
콩알만한 항문점막 염증 때문에 고열과 통증에 고생하면서
남들의 작은 상처도 품어야하는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편안..
평안..
이 두 단어를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릅니다.
몸이 고단하니 그저 편안히 잠을 자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그런 부정된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마치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처럼.. 곧 졸업을 앞둔 수험생 처럼
이 시기를 지나면 나는 더 강하고 멋진사람이 되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때 꿈꾸던 일들이 현재 저에게 참 많이도 일어났는데..
가끔 그 때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투병생활이 힘들어도 몇가지 실천해 보시는게 어떨까요.
이 시간 또한 소중하다.
가시고기에 보면 ‘오늘 이시간은 어제 떠나간이의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을 주고 받고 감사를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시간에 감사해 보세요.
하루에 두세가지씩 감사할 이유를 찾아보세요.
오늘은 밥을 반공기넘게 먹을 수 있으니 감사
오늘은 혈소판을 맞았는데 두드러기가 안나니 감사
오늘 저녁은 일반식을 먹으니 감사
제 일기장의 어느 날 쓴 감사리스트 입니다.
매일 걸으세요.
처음 관해치료시 출혈로 인해 온몸에 근육이 빠져나가
혼자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를 탔어야했습니다.
매일 걷기로 2번째 항암때는 전 혼자다시 잘 걸어다녔습니다.
대학병원의 한적한 곳을 규칙적으로 걷거나 보호자와 긍정의 대화를 나누며 걸어보세요.
다음번 치료를 받을 때 자신감과 체력이 쑥쑥올라갑니다.
그리고,
병을 이겨낸 다음의 생활을 꿈꾸세요.
그 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계획해보세요.
치료의 고통과 걱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식을 먹을 수 있을 때 꼭 먹고싶은 메뉴리스트를 작성해도 좋습니다.
제가 처음 입원해 작성을 시작한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밝고 쾌활하며 매사에 긍정적인, 병같지도 않은 가짢은 백혈병과 한 판 붙고 있는 김요엘 군의 노트'
치료중이신 환우분들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신 환우분들
모두에게 이런 당참을 전해드립니다.
이따금 나태해지고, 감사가 원망이 되는 시점에
다시 반성하고 감사하게 하는 기회들이 저에게 있어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먼저 말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또 꿈꾸던 일들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모든 환우분들과 보호자분들과 치료에 힘써주시는 선생님들에게~
건강한 일상의 꿈을 그림으로..
그 꿈에 닮아가시길 ~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정성을 다해 마음을 더해 당신을 응원합니다.
'꿈의 바램을 쫓는 팔랑개비 응원단장 impinwheel 김요엘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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